가마우지 위로
고리로 목구멍을 옥죄고 물고기 사냥을 시켜도, 먼길 떠나기 좋아하는 여행자를 붙박이로 만들어도 가마우지는 까만 날개를 활짝 펼치고 위로 날아오른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 인간들 앞에 까만 날개를 활짝 펼쳐 아름다운 군무로 인간을 위로한다.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무섭게 하제의 마지막 집을 부수는 국방부 앞에 서럽게 우는 인간을 위로한다. 우리 위로, 위로! 날아오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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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가마우지
Phalacrocorax carb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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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라]에서 네 번째로 소개할 수라 생물은 민물가마우지입니다.
민물가마우지는 사다새목 가마우지과의 조류로, 무리를 이뤄 번식합니다. 기부 쪽이 노란색을 띠는 부리는 갈고리처럼 끝이 휘어 있어 일단 잡은 먹잇감은 잘 놓치지 않고 큰 물살이도 거뜬히 잡아 올릴 수 있습니다. 다른 물새들과는 달리 물에 흠뻑 젖도록 설계된 특수 깃털을 가지고 있어 1분 이상 잠수할 수 있으므로 물살이 사냥에 매우 용이합니다.
민물가마우지는 본래 늦가을부터 우리나라를 찾아오던 겨울 철새였으나, 2003년도와 2008년에 한강 하구와 서해 도서 지역에서 집단번식이 보고된 이후 국내 내륙 지역으로 번식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물가마우지가 텃새화되고 개체수가 급증한 원인으로는 이상기후로 인해 기온이 높아진 점, 생태계 균형이 깨져 천적이 없어진 점, 인위적인 하천 및 보의 변형으로 물길이 단순해져 포식이 용이한 환경으로 변한 영향 등을 꼽습니다. 여기에서 민물가마우지가 자초한 원인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민물가마우지로부터 비롯했다 주장되는 산림 훼손, 어업 피해 등 여러 피해사례가 생겨나며 2023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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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민물가마우지를 처음 본 것은 2007년 겨울이었습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뉴스에 등장한 민물가마우지는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쓴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봉변도 그런 봉변이 있을까요? 저는 그 새의 눈빛에서 보았습니다. 인간의 부주의로 발생한 자연의 재앙이 야생의 생물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지를요. 그 모습에서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잠수부이자 사냥꾼인지, 물새로서 어떤 특별함을 가지는지 등 존재의 존엄성, 탁월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시커먼 기름에 무력하게 묻혀버린 것이지요.
지난 10월 말, 살살페스티벌에 참가해 다같이 민물가마우지의 서식지인 옥녀봉에 갔습니다.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로 하얗게 뒤덮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한 산성의 배설물 때문에 숲이 고사하는 이러한 상황 또한 민물가마우지가 미움받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한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숲이 고사하면 민물가마우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3~5년이 지나면 배설물의 풍부한 영양소로 인해 오히려 숲은 건강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민물가마우지의 수난사에 관한 글을 쓸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의 생태에 대해 소개하려니 자연스레 그리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민물가마우지가 해상 기름유출 사고의 피해자이자 유해야생동물 당사자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심지어 민물가마우지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이유는 내수면 양식업, 어업 등에서 어민에게 큰 재산상 피해를 주기 때문인데, 이 또한 정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내수면 어업에서 어획량이 줄어든 것은 외래종, 남획, 댐 형성, 쓰레기 오염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멸종위기종은 특별히 보호하고, 인간에게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동물은 ‘유해’하다 낙인 찍으며 생태계 보존과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행태는 모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연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를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채 공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진희 외(2018), 「한국에서의 민물가마우지의 번식지 분포와 새끼새의 이동에 관한 연구」, 『환경생태학회 학술대회논문집 28(2)』 김연수(2003), 『사라져가는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당대 정성인(2024), 「[지역에서 본 세상]민물가마우지와 공존 준비해야」, 경남도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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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5월, 모두들 번식을 위해 먼길을 날아와 분주하다. 그런데 세 마리다.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이 짝을 이룬 서식지에 날아왔다. 자신의 짝을 지키기 위해 젊은 수컷은 온 힘을 다해 불청객과 싸운다. 1분 여 간의 싸움은 끝이 나고 날아온 수컷이 달아난다. 이렇게 수라에서는 수많은 생명의 이야기가 웅덩이마다 이루어진다. 우리는,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사는 이들을 들여다 볼 여유가 있을까? 이렇게 온힘을 다해 생명을 이어가려는데, 우리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을까? 같이 산다고, 같이 살겠다고, 친환경이라고, 자연친화적이라고 수만 번 되뇌어 보지만, 실상은 이런 자연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장소를 남겨두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연을 단 한번도 버리고 살아본 적이 없다. 새들은 수라갯벌의 습지대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시 날아 멋진 장다리물떼새의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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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수라갯벌은 갯벌이 아닐까? 새만금 신공항은 미군기지가 아닐까?
100년 전 수라갯벌은 강 하구에 위치한 섬의 갯벌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만경강이 흐르고 강 하구에는 무의인도라 불리던 섬이 있었다. 이 섬이 현재의 남수라마을에서 하제마을에 이르는 지역이고 그 앞바다의 갯벌이 수라갯벌이었다. 육지와 섬 사이가 평평한 갯벌로 이뤄져 있고 수심이 낮아 1920년 일제강점기 수탈정책에 의해 갯벌은 땅으로 매워졌다. 간척지에는 논이 생겼고 마을이 있던 섬에서는 1940년 군사기지가 생겼다. 그 후 약 38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군산미공군기지가 현재까지 운영 중에 있다.
수라갯벌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군산미공군기지다. 보지 않으려 해도 해안선 경계면을 꽉 채운 미군기지를 수라갯벌에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서울지방항공청과 새만금신공항 사업자들은 수라갯벌에 국제공항을 짓겠다고 하면서 군산미군기지는 없는 곳처럼 취급한다. 11월 11일 ‘새만금 국제공항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청회’에서 여러차례 미군기지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협의중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는 말로 즉답을 피해갔다.
‘인위적으로 해수유통이 이뤄지는 곳을 갯벌로 볼 수 있습니까’라고 재판부가 질문을 했다. 지난 10월 ‘새만금국제공항 취소소송’이 진행된 서울 행정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부를 대리하는 피고측 변호인은 ‘이른바 수라갯벌’이라고 하면서 갯벌이 아니라는 취지로 변론을 하고 있고 시민들을 대리하는 원고측 변호인은 법정보호종만 59종이 살아가는 염습지이자 갯벌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마지막 심리에서 재판부는 하루 두 차례 인위적으로 진행되는 해수유통은 자연적 해수유통이 아닌데 이곳을 갯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수라를 갯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와서 보고 판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원고측은 현장검증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거절했다.
수라갯벌은 갯벌이 아닐까? 새만금 신공항은 미군기지가 아닐까?
살아 있는 동식물들은 이사를 시키면 되는 것이고 미군기지는 개항 후 협의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일 뿐일까?
본래 갯벌이었던 곳이 인위적 해수유통이라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은 자연적 변화가 아니라 정부의 새만금 개발사업에 의한 것이었다. 미군기지 바로 옆에 신공항을 만들면서 미군들에 독립적인 공항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복잡하고 역사적인,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공간이 수라갯벌임에도 이 모든 복잡성을 떼어내고 단편적인 사실만 다루는 것은 사실관계조차도 멀어지게 만든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더욱 붉게 물든 수라의 염생식물들과 수만개체가 운집한 검은머리흰죽지와 가마우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의 폭신한 곳을 찾아 굴을 파고 있는 칠게와 어린 조개들. 수라갯벌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수라는 갯벌이고 새만금 신공항은 미군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진실을. 그러니 와서 보라. 새들은, 자연은 인간을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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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글쓴이_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12학년 이응
지금, 여기, 레디 액션! 의문 품기, 의문을 끝까지 말할 줄 알기, 어차피 안 되겠지 하지 않기
지난 1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전쟁박물관, 평화박물관 들을 찾아다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프로젝트의 후반부 과정에서 찾아간 곳이 바로 군산이었다. 작년에 군산평화박물관에 처음 가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유일하게 평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가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고, 평화바람과 현장에서의 생활도 함께해보고 싶었다. 지난 9월, 일주일 정도 평화바람 집에서 머물렀다. 또 10월에는 학교 구성원들과 같이 다시 한 번 군산을 찾아가 근현대사도 공부하고, 살살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하루의 기록을 공유하고 싶다. 수라갯벌을 드나드는 새들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물가에는 수십 명 새들이 앉아있었다. 전투기 나는 소리가 들리니 몇몇은 도망쳤지만 한 쇠오리 떼는 휭 날아올랐다가 어느새 다시 내려앉았다. 저어새들은 소리가 들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을 한다. 새들도 전투기 소리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 소리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살 수 있는 새들의 힘이 멋지기도 했다. ‘저 전투기 따위가 우릴 쫓아낼 수는 없지’ 하는 당당함처럼도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수라와 해창갯벌을 걸으며 여러 이름들을 알게 되었다. 황새, 저어새, 갈매기, 가마우지 같이 어디서 들어본 새들부터, 뒷부리장다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검은머리흰죽지오리처럼 길지만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새들을 만났고, 이들의 발자국을 구분하는 법을 터득했다. 가을철에 붉게 물드는 퉁퉁마디와 칠면초와 해홍나물을 만났고, 풀잎을 이어 붙여 집을 짓는 거미들을 만났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호기심이 깨어나서 좋다. 누구든 수라와 해창을 찾아가 이들을 만난다면, 그곳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아직도 개발을 말하는 사람들은 ‘여기 대신 저기’로 옮겨가서 사는 게 마치 대안인 것처럼 군다. 그건 대안이 아니다. 대안은 ‘여기’를 없애지 않는 것이고, 죽이지 않는 것이다. 쫓아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딸기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고 허허벌판 같이 보이는 간척지라도 아직 염생식물이 울긋불긋 살고 있으면 그 땅은 살아있는 땅이라서 다시 회복될 여지를 품고 있다고, 갯벌이라는 말이었다. 자연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응답이다.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그간 다녔던 대부분의 (평화)박물관들은 다들 ‘국제사회에서 화해와 상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분도 그것에 동참하라’ 이렇게 완결된 서사로 전시를 끝내버렸다. 지금 당장도 평화롭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들을 한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군산평화박물관에서는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바람이 유랑하며 투쟁 현장들에 함께했던 것을 알려준다. ‘질 때까지 싸웠다’는 것.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것. 군산에서의 경험들이 나의 기억과 마음에 좋게 남는 이유는 그런 것 같다. 수라가 보내는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그게 허무맹랑하지 않고 언젠가 무언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느낄 수 있어서. 평화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지금-여기의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어떻게 평화를 찾아갈 수 있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더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따라하고 싶은 지점들은 몇 가지 있다. 평화바람 일대기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당연하다고 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의문을 끝까지 말할 줄 알기, 어차피 안 되겠지 하지 않기 같은 자세이다. 어쩌면 어려운 일들이지만 적어도 군산에서 배운 걸 군산에 두고 오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있는 지금-여기에서 좋은 선택들을 고민한다면, 나의 길도 평화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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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글쓴이_팔현습지를지키는예술행동 당근
하제마을 팽나무 이야기는 2023년 <금호강 디디다>팀 활동을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물리적 거리도, 심적 거리도 먼 ‘군산’의 어느 한 마을에 있다는 팽나무 이야기는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사라져가는 대구에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금호강의 개발 이슈를 알고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군산의 팽나무에게서 낯선 반가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 꼭 가봐야지, 생각만 하던 팽나무와 수라갯벌로 설레는 마음을 품고 군산으로 향했다. 일정이 있어 늦은 저녁 도착하게 된 하제마을은 캄캄한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미군부대로 보이는 곳의 하얀 빛과 차에서 비추는 노란 불빛만으로 비포장도로를 어색하게 살피며 깊숙이 향했다. 먼저 도착해 ‘팽팽문화제’에 참여한 금호강 디디다의 팀원 감감이 알려준 팽나무는 어두워 그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나무 장작이 타는 소리 그리고 그들이 내는 작은 빛들에 눈길이 머물렀다. 따뜻한 불을 쬐며 밤을 보냈다.
날이 밝고 팽나무의 장엄한 기운을 받으며 준비해 주신 음식과 프로그램을 성실히 따랐다. 어느 채석장의 가마우지 서식지, 수라갯벌을 지나 부안 해창갯벌까지...
앞서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눠 주시는 딸기님의 목소리를 따라 새만금 남북로를 걸었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친구 차의 네비에서 우리가 걷는 길은 바다로 나왔다. 5km 정도의 길을 걸으며 한해살이풀, 새, 나무 등 많은 생명들을 마주했지만, 머릿속엔 오직 인간의 욕심과 폭력성에 대한 생각만 떠올랐다. 대구시는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발표하며 41.6km의 대구 금호강 일대에 24시간 전망대, 물놀이장 등을 계획하고 있다. 누군가는 계속 개발을 하고, 누군가는 계속 반대를 하며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이 마음속 한편에 늘 함께하고 있는데, 이날 마주한 풍광은 또 다른 차원의 무력감을 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을, 이 땅을 만든 이유, 셀 수도 없이 많은 돈으로 다른 생명의 존재를 파괴하는 이유, 흐르는 바다의 길을 막는 이유...
두 발을 디디고 서있는 이 길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었을 바다의 시간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함께 걷는 사람들의 따스한 눈빛과 흥겨운 노랫말과 악기 소리 그리고 단단히 세워진 장승들을 마주하면서 군산을 걸으며, 혹은 대구 금호강을 걸으며 느꼈던 슬프고 화난 마음을 나누고 채워가는 시간을 오롯이 느꼈다.
마지막 날 해창갯벌에서 저 멀리 무리 지어 서있는 도요새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다르지만 함께 머물며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동그란 렌즈 안에 맺힌다. 도요새처럼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금호강이 보고 싶었다.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연결되고, 함께 소리 내는 것이 가지는 힘을 몸과 마음으로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다음날 금호강 달성습지에서 있었던 르네상스반대 활동에 힘찬 걸음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각자의 서식지를 충실히 디디며, 다시 연결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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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두부카레의 두 가지 버전
10월 팽팽문화제는 1박2일 캠핑이다. 함께 식사하실 분들이 적을 때는 가급적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 다양하게 준비하지만 많을 때는 누가 먹어도 문제없는 메뉴를 구성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화제는 참여자들이 많아서 비건식만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비건음식을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비건식이 많이 보편화되어 가는 것 같다.
여하튼 이번 행사에서 특별히 고민한 비건음식은 두부카레다. 예전에 한번 두부카레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렇다고 똑같이 할 수는 없지.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준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끔 요리를 하다보면 요리라는 것이 어쩌면 내가 고민하는 어떤 방향들과 상당히 겹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령 최근 활동영역에 있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문화예술의 언어와 활동의 언어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문화예술이 가지는 특징들 자체가 현실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현재성을 가진 재현에 가깝다면, 활동/활동가들의 언어라는 것은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다른 현실로 전환시키려는 언어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즉, 하나는 재현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해체의 언어가 되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재현의 언어에서는 결국 ‘해석과 풍자’가 중요하겠지만, 그러한 언어들이 과연 ‘현재성’을 어떻게 잘 드러낼 것이냐가 그 성패를 가르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해체의 언어에서는 ‘분석과 재구성’이 중요하겠지만 결국 재구성된 무엇인가가 결국엔 ‘현재의 언어로 그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는 근본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
두부카레를 가장 카레처럼 만드는 방법은 기름에 잘 볶는 데 있다. 각종 재료를 볶은 후에 카레를 첨가하여 깊은 맛을 우려내는 게 카레의 핵심이라면 비건식 두부카레도 거의 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각종 야채를 볶아 놓고, 사각으로 자른 물뺀 두부에 튀김옷을 잔뜩 입혀 고소해질 때까지 노릇노릇 튀겨낸 후에 카레물을 넣어서 만드는 두부카레는 결국 기름맛을 어떻게 적절히 입히느냐가 그 풍미를 좌우한달까?
처음 비건 요리가 보편화될 당시에는 대게 이런 방식이었다. 기존 요리들의 레시피를 분석해서 비건 식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같은 맛을 재현해 내는 것이 비건요리의 성취를 측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 대표적인 음식이 아마도 콩고기와 같은 대체육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 요리할 때는 결국 나의 요리과정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집어넣어야 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번 팽팽문화제에서 요리한 두부카레는 사실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두부탕을 끓이는 방식이다. 두부에 적당한 물을 넣고 으깨거나 갈아준 다음에 약한 불에서 보글보글 끓이다가 카레를 넣어 맛을 잡아주는 정도. 이러면 매우 부드러운 순한 맛이 되므로 뭔가 맛의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 버섯을 간장에 짭조름하게 볶아 준 다음 두부카레에 토핑으로 올려주는 방식으로 요리했다. 이건 솔직히 카레는 아니다. 그렇다고 두부탕도 당연히 아니고.
그렇지만 이건 무슨 요리냐는 질문에, 어쩔 수 없이 순한 맛의 두부 카레라고 설명해 드리기는 한다. 요리 방식으로만 보면 전혀 새로운 요리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려면 결국 두부카레라고 하는 게 가장 근접한 설명이긴 하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쉽게 카레라기에는 맛이 너무 순하고, 두부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특이한 맛이라서 애매한 반응을 보여주시곤 한다. 먹어보면 맛은 있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어리둥절해 한다.
그렇게 두부카레의 두 가지 버전은 저마다의 맛도 있고, 애매함도 있다. 그러니까 꼭 어느 한 방식만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내가 지금 활동하며 고민하는 것들, 비참한 현실을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거나 충격을 가하여 현실을 극복하려는 ‘재현의 언어’나 비참한 현실을 파괴 혹은 해체함으로써 전혀 다른 현실을 미래가 아닌 현재로써 드러내려는 ‘해체의 언어’. 어느 하나만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게 아니라 결국엔 ‘지금 당장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요리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팽팽문화제에서 항상 음식을 장만해주는 '공룡'은 투쟁현장에서 기록과 음식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몸을 쓰며 연대하는 청주 지역 단체입니다. 글쓴이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멤버이자 팽팽셰프 박영길 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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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격납고와 탄약고,
철조망에 갇히게 될 천년 하제,
600년 팽나무
천연기념물 지정과 동시에 주거지 강제 철거
한 달에 한번 모여 ‘팽팽문화제’를 여는 하제마을 팽나무가 지난 10월 31일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자연유산이 되었다.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을 바꾸고 처음으로 지정한 자연유산이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다. 그런 이유로 특별히 기념행사를 한다고 전해왔다. 축하할 일이다. 그동안 팽나무를 지켜온 시민들은 팽나무의 천연기념물 발표에 모두 기뻐했다. 비록 미군기지 때문에 640여 세대의 주민들은 쫓겨났지만, 이제 천연기념물이 되었으니 ‘미군으로부터 이 땅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기념행사를 위해 관계자들은 팽나무 주변 부서진 집들의 잔해들과 잡동사니도 밀고, 잡초도 깎아 널찍한 잔디밭처럼 만들었다. 우람하게 우뚝 솟은 팽나무를 돋보이도록. 그리고 팽나무 보호를 위해 주변에서 영농행위를 못하게 하고, 길목에 설치된 ‘전쟁말고 평화’ ‘공항말고 갯벌’ 나무 피켓과 문정현신부가 서각으로 만든 팽나무 푯대인 ‘천년 하제, 600년 팽나무’를 뽑아냈다.
팽나무는 600년 동안 사람들과 온갖 풍상을 겪으며 함께 살아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팽나무로 가는 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왜 미군기지 철조망을 돌고 돌아 거대한 시멘트 돔의 격납고와 섬뜩한 탄약고를 지나 미군기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야 하는지, 왜 사람들이 쫓겨났는지, 이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기보다, 조선 초부터 살아온 자연유산이란 이유를 들어 하제마을의 역사를 지우고 뽑아버리며 팽나무를 신성시하려 한다. 그러니 기념행사 축사에서 주민들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마치 주민 스스로 삶의 터전을 나간 것처럼 취급한 것이다.
우연일까? 팽나무가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자 국방부는 하제마을에 남아있는 2가구에 대한 강제철거를 시작했다. 11월 7일 하제포구에 남아있는 한 집을 행정집행을 통해 강제철거 했고, 11월 20일에는 마을 안쪽에 있는 마지막 집에 대한 강제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국방부는 하제마을에 철조망을 쳐 이곳이 군사기지임을 알리고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해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강제철거를 단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팽나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국방부 철조망에 갇혀있는 자연유산, 거기다가 미군기지로 확장된다면 대한민국의 자연유산이 철조망 안에 갇히게 된다. 팽나무는 살아있지만 사라진 것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제마을의 주민처럼... 또 다시 반복되는 하제마을의 역사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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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일곱번째 팽팽문화제
2024년 11월 23일 (토) 14시 하제마을 팽나무 앞
군산평화박물관
개관시간 매주 수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점심식사 시간 12시~1시 30분)
공휴일, 월요일, 화요일 정기 휴관
새만금 상시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 기원미사 (~2024.11)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해창갯벌(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1024-7)
*천주교 전주교구청에서 1시 30분 버스 출발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한 선전전
매주 목요일 오후 4시~5시 군산 한길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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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펴낸곳 | 팽나무도요새클럽
함께하는곳 | 군산평화박물관
만든이 | 치자+우엉+자연+인디
표지그림 | 치자
편집 | 자연
배포+제작 | 작두+수선화
디자인 | (주)디자인사과나무
팽나무도요새클럽은
군산의 평화운동단체 '평화바람' 주변으로 이끌린 사람들의 그룹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좋았어요! 🤗ㅣ 음, 잘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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