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새봄, 평화를 부르는 작은새 꼬까도요
산에 산에 꽃이 핍니다.
들에 들에 잎사귀가 솟습니다.
갯벌에 갯벌에 생명이 돋아납니다.
새봄에 중동의 땅에는 매캐한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만금은 개발이라는 광풍 앞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꼬까도요,
꽉 쥔 고사리손 만한 꼬까도요가
며칠을 날아 수라갯벌을 찾아옵니다.
큰뒷부리도요, 흰목물떼새,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들이
새봄과 함께, 새꿈과 함께
머나먼 곳에서 수라를 찾아옵니다.
새봄에 그리운 곳을 갈 수 있다면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다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을 수 있다면!
새봄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날개를 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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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지금 어디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든다. 꼬까도요의 최근 흔적을 찾아보니 며칠 전에 멕시코, 미국의 플로리다주, 텍사스주 등에서 찍힌 사진이 뜬다. 멕시코만, 카리브해 주변이다. 꼬까도요는 주로 해안가에서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유라시아대륙 북부, 북미 북부의 툰드라지대에서 번식하고, 아프리카, 남아시아, 호주, 중남미에서 월동한다.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한데, 어떤 개체는 약 10,500km를 이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갯벌은 이들에게 중간기착지로 이용되며, 주로 봄, 가을에 찾아온다.
꼬까라는 말은 알록달록하게 곱게 만든 아이의 옷이나 신발 따위를 이르는데, 실제로 성체 꼬까도요는 번식기가 되면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깃털로 갈아입는다. 머리와 목은 뚜렷한 흑백 무늬를 띤다. 다리 색깔도 선명한 주황색이 된다. 그러나 어린 도요새들은 따로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성체 몸무게는 150g 남짓, 길이는 16~23cm 정도로 작은 편이다. 작은 몸임에도 머리는 무척 영리하다. Ruddy Turnstone라는 영명처럼, 꼬까도요는 먹이를 찾기 위해 돌, 조개, 해초 등을 뒤집는 행위를 한다. 때로는 여러 마리의 새가 협력하여 더 큰 물체를 뒤집기도 하고, 물체가 모래에 길게 박혀 있다면 그 밑을 파내어 구멍을 만들고 물건을 굴려 뒤집는 행동도 한다. 다양한 해양 환경에서도 먹이를 잘 찾는 편이며, 짧고 구부러진 발톱, 약간 가시가 있는 발은 미끄러운 바위 표면에서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짧은 다리와 낮은 무게중심은 균형을 유지하기에도 용이하다.
꼬까도요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AF)를 이용하는 큰뒷부리도요의 소식이 요새 많이 들린다. 수라갯벌 지킴이들이 AJD라는 인식표를 달고 있는 큰뒷부리도요 소식을 계속 전해주고 있어서이다. 이들은 ‘큰뒷부리도요을 찾아서, 수라갯벌과 뉴질랜드를 잇-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질랜드 황아누이에서 열리는 큰뒷부리도요 환송식1)에 참석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출발한 큰뒷부리도요를 중간기착지인 수라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까 (3월 30일, 현지시간 오후 7:30) 확인한 바로는 AJD는 아직 황아누이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수라엔 언제 올지 궁금하다. 큰뒷부리도요, 꼬까도요 모두 지금 어디에 있든 그곳의 생태계 내에서 인위적 위해 없이 안녕했으면 좋겠다.
1) 이 환송식은 큰뒷부리도요인 ‘쿠아카’를 조상이자 가족, 인생의 선생님으로 모시는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에 의해 치뤄진다.
[참고 및 인용] 국립생물자원관 iNaturalist thebdi.org/2024/04/04/ruddy-turnstone-arenaria-interpres/ eastkent.birdwise.org.uk/protecting-the-birds/turnstone-arenaria-interpres https://nationalzoo.si.edu/animals/ruddy-turnstone https://www.waderquest.net/what-are-waders/turnstones/ruddy-turnstone/ Upics.co.n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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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장금마을에는 담벼락을 조개로 쌓아둔 집이 있다.
집이 쓰러져 간다. 15년 전 조개껍질을 담았던 망의 실 가닥도 햇볕에 하나둘 삭아 무너진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조개가 나오지 않은 지 15년이 넘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으니 옛 기억이 몰아쳤다. 하제 포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조개들과 부지런히 조개를 까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 땅이 조개가 이렇게 많이 나는 곳이었음을 기억해 달라는 몸부림처럼도 느껴졌다. 그때는 그냥 버려지는 폐기물이었을지언정, 시간이 지나서는 이곳의 가장 풍성했던 기억을 증언하는 주인으로 서 있다.
세상의 자연도 호령했을 사람들은 버리고 떠났는데, 조개만 외치고 있구나.
그래, 다시 살아 바다로 돌아가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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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뒷부리도요를 찾았다!
큰뒷부리도요를 찾는 긴 여정이 끝났다.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에서 큰뒷부리도요는 푸코로코로 미란다 도요물떼새 센터 활동가들의 50여년에 걸친 긴 갯벌 보전운동의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농장을 만들기 위해 갯벌이 매립되었지만 새들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과 농장주(Robert Findlay)의 결단으로 현재의 보호구역을 가꿔갈 수 있었다. 수천마리의 검은머리물떼새와 장거리 비행을 준비하는 큰뒷부리도요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쉼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황아누이강을 법인격으로 지정하고 큰뒷부리도요(쿠아카)를 조상으로 모시는 마오리공동체를 만나 자연과 인간의 유대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배울 수 있었다. 쿠아카를 따라 뉴질랜드에 도착한 마오리부족은 먼거리를 여행하고 다시 돌아오는 쿠아카를 통해 지혜와 끈기 그리고 용기를 배워왔고 이들을 조상이자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다. 쿠아카를 조상으로 여기는 마오리에게 자기자신은 곧 강의 일부라 여기는 마음은 특별히 개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치며 연결이 깨어진 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황아누이강에 법인격이 주어진 것이다. 강을 지키려는 사람이 강을 대변하는 법적 구조는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조차 법적으로 갯벌을 대변할 수 없는 한국의 현 주소를 떠올리게 했다.
수라갯벌의 소식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 활동가들은 1심 승소 이후 이어지고 있는 항소심 소식에 걱정하고 있었다. 뉴질랜드역시 개발을 원하는 세력과 정부의 정책 속에서 자연을 지켜온 역사가 있기에 이들의 걱정에는 진심이 스며 있었다. 어디에나 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작은 갯벌이나마 지켜질 수 있다는 점에서 뉴질랜드와 수라갯벌의 상황은 맞닿아 있다.
뉴질랜드의 갯벌을 보며 수라갯벌을 떠올리고 새만금 갯벌이 파헤쳐지는 것이 단지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잃은 것이 얼마나 광활한 갯벌이었는지, 그속에서 살아갈 생명의 가능성, 존엄 그 자체가 사그라들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럼에도 저 멀리 뉴질랜드에서 그렇듯 수라갯벌에서 그렇듯 지키려는 사람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파괴의 역사만큼이나 생명의 역사 역시 지속될 것임을 다시금 알게 됐다.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도 수라갯벌에 모여 매일 아침 7시 기도를 드렸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오자마다 수라에가서 아침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백배 기도를 했다. 고요한 갯벌위로 작은 도요물떼새들이 날아오르고 검은머리갈매기가 번식준비를 마치고 분주히 움직인다. 한편 수라갯벌 맞은편, 도로가 생기며 둘로 나뉜 수라갯벌의 일부인 8공구가 매립공사로 분주했다. 또 하나의 서식처가 파괴되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본다. 민물도요, 흰물떼새, 그리고 붉은어깨도요가 보였다.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서식처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작은 새들은 내년에도 수라에 올 수 있을까.
큰뒷부리도요를 찾아나선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3월 25일 뉴질랜드에서 환송식을 하고 4월 4일 수라갯벌에서 환영식을 하며 우리를 이어준 큰뒷부리도요는 수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큰뒷부리도요로 상징되는 수라갯벌의 뭇 생명들이 우리로 하여금 잊고 있던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개발과 성장이 아닌 생명의 편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을 다시 깨우치게 한다. 지금도 수 많은 새와 생명의 서식처가 전쟁으로 파괴되고 전쟁같은 개발로 파괴된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에 서는 것이 거대한 권력의 파고에 맞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수라에 봄이 왔다. 큰뒷부리도요가 돌아 왔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다른 존재들의 고통을 모른척 하지 않는 눈물 흘릴 줄 아는 새 사람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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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팔레스타인과 서사에 관하여"(이사벨라 함마드)를 읽고
따사로운 봄볕이었다.
앞머리를 손질해주는 이발사가 있고, 나무도마를 갈아주는 공방이 있고, 순례의 걸음을 빼곡히 담은 책이 있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마음이 있고, 정성 들인 소박한 음식이 있었다. 2026년 3월 팽팽문화제는 문정현 신부님의 아코디언 연주로 시작했다. 나무님의 반주가 곁들여진 잔잔한 가락을 따라 어린 시절로, 혹은 경험하지 못했던 어느 먼 평화로운 시절로 흘러갔다. 평화였다.
전쟁을 멈추라는 외침에 앞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평화, 너의 평화 그리고 우리의 평화이다. 평화를 실체적으로 감각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2026년 봄, 미국의 공격, 이란의 반격이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절멸시키려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의 집요한 폭력이 2023년 이후 그악스럽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 200여 명을 납치했고, 몸값으로 감옥에 갇힌 5000명의 팔레스타인 정치범을 석방을 요구했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잘 알려진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 강연(20주기)을 마친 아흐레 뒤에 일어났다. 역시 팔레스타인계 영국 작가 이사벨라 함마드는 '후기- 가자에 대하여'를 덧붙여 강연록을 발표했다.
"... 핸드폰으로 하나의 집단이 대량 학살당하는 전쟁을 지켜본다는 것은 인간사의 새로운 끔찍함이다. 전쟁의 폭력으로 살해당하기 직전에, 민간인과 아이와 학자와 예술가와 기자들이 사회 관계망 서비스로 그 현장을 생중계하는 것이다."
글이 아닌 영상으로, 게다가 생중계로 전달해도 현장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현장의 냄새, 현장의 소음, "한 시체를 넘어 다른 시체로 걸어가야 할 때 깡충거리는 동작"을 취해야 하는 현장의 감각을 전달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는 너무 많은 전쟁의 참상에 점점 눈을 가린다. 내 하루 일상의 평온을 찾기도 힘드니,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하고 비참한 문제에 관심 갖지 않겠다며 귀를 가린다.
이사벨라 함마드는 우리의 무관심을 꿰뚫어 보았다. "신문과 뉴스 방송국의 이중 화법, 노골적인 이중 잣대, 암살과 대량 학살을 정당화할 구실로 슬픔을 냉소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틀림없이 분노"한다. 세계의 톱니바퀴는 엄청난 속도와 결렬함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 어느 시점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은 것 같고, 그 선의 이쪽에서는 이윤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결합한 벌거벗은 권력이 인류 공동의 이익을 압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한들 달라지겠냐는 냉소와 체념의 언어가 익숙하게 내 입 밖으로 나오게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팽팽문화제에서 '멈춰, 전쟁!' 이라는 구호를 외쳐보고, 한미군사훈련을 반대한다는 피켓이라도 들어볼 것인가. 아니면, "낯설게 하기- 팔레스타인과 서사에 관하여"의 한 구절이라도 주의 깊게 읽어봄은 어떠할까.
"당신이라면 무엇을 했을까? 그 말은 아직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은 또한 시간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나고 나서 말하기는 쉬울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 세상이 요동치던 그때,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라고.
물러나지 말라.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되어 보라.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라. 말하라, "저게 나야!"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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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는 두릅을 대신해 알알이 진행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익산에 살고 있는 새우난초입니다.
팽팽문화제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수라 영화를 보고 이 지역에서 이런 운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다가 어찌어찌 하다 보니 팽팽문화제도 알게 돼서 오게 됐습니다. 처음 왔던 것은 23년 가을쯤이고 그 뒤로도 왔는데, 초기에는 헛걸음을 하기도 했어요. 셋째주 토요일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셋쩨주에 맞춰서 왔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 셋째 주라는 게 "일요일 세 번 지나고 난 후 토요일"이라는 것을 작년 겨울에야 알았어요.ㅎㅎ
자꾸 팽팽에 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냥, 그냥 좋아요. 그냥 좋고, 다른 지역에서 이 조그만 문화제에 와서 이렇게 공연도 하시고, 오늘은 또 이렇게 합창단까지 서울에서 버스 대절해서 오시고 막 이러는 거 보니까 막 그게 막 감동인 거죠. 그러니까 그런 감동을 받는 순간들이 사실 살면서 그렇게 많지 않은데 여기를 오면은 올 때마다 그런 감동이 이렇게 오니까 그게 참 좋아요. 삶의 활력도 되고. 내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좀 잘 살고 있구나, 라는 어떤 그런 위로도 좀 되고 또 힘도 되고 이런 것 같아요.
지금 해 주신 말씀이 <월간 수라>를 읽는 사람들한테 힘이 될 것 같아요. 평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분쟁이 없는 것. 모두가 다툼이 없이 잘 사는 것. 근데 그 다툼이 없다는 거엔 자연도 포함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들끼리만 다툼이 없는 게 아니라 자연과도 더불어서 잘 사는 거 이런 거가 평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욕심 좀 내려놓고 이러면 전쟁이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란 전쟁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트럼프와 네타냐후 총리 두 사람의 욕심인 것 같거든요. 자기들 욕심 아니면 자기네 어떤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이렇게 일을 터뜨린 것 같은 느낌이라서, 그것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의 큰 일일까, 그게 뭐라고 죽으면 다 부질 없어지는 건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나 하나 잘 살겠다는 욕심으로 갯벌에 살고 있는, 아니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해치는 식으로 살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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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말고 환대, 꽃, 음악_3월 팽팽문화제 참여자 3명의 소감
‘군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군이 빼앗긴 한국 땅을 사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이 미 공군 활주로의 일부를 사용하기 위해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군 기지 주변을 차로 돌며 미군이 지역 주민들과 생태계를 의도적으로 몰아낸 것에 대해 알게 될수록, 제 속의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러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팽팽 축제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따뜻한 환영은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고, 팽나무 근처에 꽃을 심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몸속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드러운 대화와 햇살,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숨을 좀 더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애나 볼렘박/Anna Bolembach)
군산에서 열린 팽팽문화제에서 저는 600년 된 한 그루의 나무가 어떻게 지역 사회에서 저항의 중심이 되었는지 목격했습니다. 마을과 주민들의 집이 철거된 후, 그 나무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유일한 표식이자 사람들이 다시 그곳에 모이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문정현 신부와 나무의 음악 공연, 서울에서 온 환경 운동가들의 합창, 시 낭송은 단순한 문화적 표현을 넘어 활동가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맞이하며 그들의 투쟁 배경을 설명해 준 평화바람 공동체와 만났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철새 보호와 같은 그들이 주장하는 환경 문제들이 항공기 소음 피해나 폭발물 보관으로 인한 안전 위험 등 군사 기지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니따 페브리아니/Yunita Febriani)
우리는 철조망 반대편을 지나며 잔디로 덮인 무기창고를 바라보았다가, 곧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구근을 심는 일을 도왔습니다. 이란 전쟁에 파병 반대하는 구호를 외친 뒤, 우리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대와 대화, 꽃과 나무, 음악과 시—전쟁과 전쟁 준비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카야 “카레” 뷔레이디/Kaia Vereide)
Welcome to Gunsan, where the Korean government must pay to use Korean land that was stolen by the US military. This was the first thing we learned upon arriving- that Korea must pay to use a section of the US Air Force’s landing strip. My feelings of frustration, shame, and disbelief continued to grow as we drove around the air force base and learned about the intentional ways that the US military displaced the local people and ecosystem. Despite these feelings, I felt such warmth at the immediate welcome we received upon arriving at the Paeng Paeng Festival. We talked easily with strangers and were recruited to plant flowers near the Paeng Namu (Hackberry Tree). I felt some of the tension leave my body; I could breathe easier in this space that was filled with gentle conversation, sunlight, and hope. (Anna Bolembach)
At the Paeng Paeng Festival in Gunsan, I saw how a 600 year old tree became the focal point of community resistance. After the village and residents’ homes were demolished, the tree stood as the only marker of the space and the reason people returned to gather in the area. Musical performances by Father Mun Jeong-hyeon and Namu, choral singing by environmental activists from Seoul, and poetry readings were not only cultural expressions but also they strengthened solidarity among activists. We also met the Peace Wind community, who welcomed us openly and explained the context of their struggle. From these conversations, we understood that the environmental issues they advocate for, such as the protection of migratory birds, are closely linked to the impact of the military base on daily life, including aircraft noise disturbances and safety risks from storage of explosives. (Yunita Febriani)
We looked at the grass-topped weapons-storage bunkers as we drove by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then we helped to plant flower bulbs which will soon spring forth from the ground with beautiful colors. After shouting to oppose the deployment of soldiers to war in Iran, we took photos together under the plum blossom trees. Hospitality and conversation, flowers and trees, music and poetry- in the face of war and preparations for war, we see more clearly what is truly precious. (Kaia Verei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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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고, 전쟁의 가장 큰 친구도 무관심이다.”
군산평화박물관에서 ‘전쟁을 거부하는 마음과 인간애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아하곤 쇼코(1901~2002)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는 무려 2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오키나와 안에서도 작은 섬인 이에지마는 전후 미군에 의해 땅과 집을 ‘총검과 불도저’로 빼앗기고, 훈련용 포탄에 참상을 겪은 곳이다. 아하곤 쇼코와 주민들은 땅을 되찾기 위해 비폭력 평화운동을 벌였고, 아하곤 쇼코는 이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넘었지만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의 오키나와, 평택 대추리, 군산 하제마을, 성주 소성리의 이야기와 같다.
3월 28일 전시행사로 준비한 심포지엄에서 오키나와의 오하타 유타카 평화활동가로부터 80년 전 아하곤 쇼코와 주민들의 평화운동, 그리고 끝나지 않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월 26일, 이 날짜는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시작된 날과 같습니다. 같은 해 2월 8일은 토카시키지마에서 집단 자살 사건이 있었고, 3월 27일은 류큐 왕국이 일본에 의해 무너진 날이며, 3월 21일은 평화운동가 아하곤 쇼코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이처럼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집중된 시기에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 사진전의 중심 인물은 아하곤 쇼코입니다. 그는 전쟁 이전 쿠바와 페루로 유학을 가서 농업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고향인 이에지마에서 덴마크식 농민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농민들도 함께 배우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고, 학교는 약 80%까지 완성됐자만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졌고, 외아들마저 잃었습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시작되면서 이에지마에도 미군이 상륙합니다. 주민들은 강제로 이주 당했고, 섬은 군사기지로 변하게 됩니다. 이에지마는 평지가 많아 비행장을 건설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되었고, 결국 섬의 대부분이 미군에 의해 점령됩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주민들의 삶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은 땅을 잃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으며, 떨어진 폭탄이나 탄피를 주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 아사자가 생기고, 4살부터 73살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아하곤 쇼코는 주민들과 함께 저항을 시작합니다. 그는 비폭력 원칙을 지키며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1955년에는 ‘걸식 행진’을 시작해 7개월 동안 오키나와 전역을 돌며 현실을 알렸고, 이 운동은 일본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지원이 이어졌고, 심지어 전범으로 수감된 조선인까지 연대했습니다.
이후 운동은 단순한 토지 반환을 넘어, “전쟁을 위해 우리의 땅을 사용하게 할 수 없다”는 더 큰 목표로 확장되었고, 베트남 전쟁 당시 이에지마가 군사 훈련 기지로 활용되면서 다시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의 70%가 집중되어 있으며, 이에지마 역시 35%가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헤노코 지역에서는 새로운 기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지금도 육지와 바다에서 8000일이 넘는 시간동안 비폭력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하곤 쇼코는 ‘평화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고 전쟁의 가장 큰 친구도 무관심이다.’라고 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주민들은 ‘이기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는 말을 마음 속에 가지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에지마에서 시작한 비폭력 평화행동은 오키나와 곳곳에서 미군기지에 저항하는 행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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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곤 쇼코 사진전_전쟁을 거부하는 마음과 인간애의 시선 3월 26일 ~ 4월19일 군산평화박물관 (수,목,금 13:00 ~ 17:00 / 토,일 10:00 ~ 17:00)
64회 팽팽문화제
4월 25일 오후 3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아래
군산 하제 팽나무할매 하늘굿 아리아리_봄 예고편
옥봉생태평화센터 건립을 위한 특별전 [평화여, 멀구나] 5월 26일(화) ~ 6월 7일(일) 공간풀숲 (서울 종로구 사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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